사주로 보는 세종대왕 — 실록 한 줄로 세운 기둥 셋과 소띠 임금의 일생
세종대왕은 정축년, 소띠 해에 태어났습니다. 실록에는 태어난 해 · 달 · 날의 간지가 한 줄로 남아 있지만 태어난 시각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주 네 기둥 가운데 셋만 세울 수 있습니다. 영상이 짚은 세 기둥을 하나씩 세워 보고, 명리 풀이와 역사 기록이 어디서 만나고 어디서 갈리는지 정리했습니다.
실록에 남은 한 줄
『세종실록』 권1 총서는 세종의 탄생을 이렇게 적습니다.
以太祖六年丁丑四月壬辰 生於漢陽俊秀坊潛邸
태조 6년 정축년 4월 임진일에 한양 준수방의 잠저에서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음력으로는 1397년 4월 10일이고,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환산으로 지금 달력(그레고리력)에 옮기면 1397년 5월 15일입니다. 스승의 날이 5월 15일인 것도 이 날짜에서 왔습니다.
사주는 태어난 해 · 달 · 날 · 시를 각각 천간 하나와 지지 하나로 적은 네 기둥입니다. 실록에는 태어난 시각이 적혀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종의 사주는 시주를 비워 둔 채 세 기둥만 세울 수 있습니다. 시주를 추측해서 채우는 풀이도 있지만, 영상과 이 글은 기록에 있는 세 기둥만 씁니다.
세 기둥 한눈에 보기
사주를 읽을 때는 태어난 날의 윗글자(일간)를 '나'로 놓고, 나머지 글자가 나와 어떤 관계인지 십성으로 따집니다. 세종의 일간은 임수(壬水), 큰 물입니다.
| 기둥 | 간지 | 보는 자리 | 임수에게 이 글자는 | 영상의 풀이 |
|---|---|---|---|---|
| 연주 (태어난 해) | 정축 丁丑 | 뿌리 · 집안 | 축토 = 정관 | 뿌리에 나랏일 기운 → 태조의 손자 |
| 월주 (태어난 달) | 을사 乙巳 | 형제 · 젊은 날 | 을목 = 상관 | 틀을 바꾸는 재주 → 셋째 아들이 세자, 스물여덟 자 |
| 일주 (태어난 날) | 임진 壬辰 | 나 자신 · 배우자 | 임 = 나, 진토 = 편관 | 큰 물 · 지혜, 그리고 나를 누르는 짐 |
| 시주 (태어난 시) | 기록 없음 | 자식 · 말년 | — | 세우지 않음 |
기둥마다 보는 자리를 나누는 방식은 근묘화실(根苗花實)이라 부릅니다. 연주는 뿌리, 월주는 싹, 일주는 꽃, 시주는 열매에 견줘 집안 · 젊은 날 · 나 · 자식과 말년을 읽습니다.
십성은 어떻게 정해지나
십성은 일간과 다른 글자 사이의 오행 관계(같은지, 내가 낳는지, 내가 이기는지, 나를 이기는지, 나를 낳는지)와 음양이 같은지로 정합니다. 세종의 세 글자를 직접 따져 보면 이렇습니다.
- 축토 → 정관. 축(丑)의 본래 기운은 기토(己土)입니다. 토는 수를 이기므로 나를 다스리는 글자(관성)이고, 임수는 양 · 기토는 음이라 음양이 달라 정관입니다. 정관은 규칙 · 직분 · 나랏일로 풉니다.
- 을목 → 상관. 수는 목을 낳으므로 을목은 내가 낳는 글자(식상)입니다. 임수는 양, 을목은 음이라 상관입니다. 상관은 정해진 틀을 넘어서는 표현력과 재주로 풉니다.
- 진토 → 편관. 진(辰)의 본래 기운은 무토(戊土)입니다. 역시 수를 이기는 토이고, 임수와 무토가 둘 다 양이라 편관입니다. 편관은 나를 세게 누르는 압박 · 책임 · 고난으로 풉니다.
같은 토라도 음양에 따라 정관과 편관으로 갈립니다. 영상에서 연주의 축토와 일주의 진토를 다르게 읽은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영상에서 다루지 않은 글자도 있습니다. 연간 정화(丁火)는 내가 이기는 음의 글자라 정재, 월지 사화(巳火)는 본래 기운 병화(丙火)가 양이라 편재입니다.
첫째 기둥 · 정축 — 뿌리의 정관
정축년은 소띠 해입니다. 뿌리 자리에 나랏일을 뜻하는 정관이 앉았으니, 영상은 이를 조선을 연 태조 이성계의 손자로 태어난 사실과 겹쳐 봤습니다. 세종이 태어난 1397년, 아버지 이방원(뒤의 태종)은 아직 왕이 아니었고 세종은 왕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둘째 기둥 · 을사 — 젊은 날의 상관
월주는 형제와 젊은 날을 보는 자리입니다. 세종은 태종의 셋째 아들이었고, 맏형 양녕대군이 세자에서 물러난 뒤 1418년에 세자가 되어 같은 해 왕위에 올랐습니다. 형제 자리의 상관을 '정해진 순서를 바꾸는 기운'으로 읽은 것입니다.
상관의 다른 얼굴은 새것을 만드는 재주입니다. 1443년 세종은 훈민정음 스물여덟 자를 만들었고, 1446년에 반포했습니다. 지금은 네 자를 쓰지 않아 스물넉 자입니다.
셋째 기둥 · 임진 — 큰 물과 그 아래의 짐
일주의 윗글자 임은 '나 자신'입니다. 임수는 바다나 큰 강 같은 큰 물이고, 오행에서 수는 지혜에 해당합니다. 아랫글자 진은 용입니다. 영상은 '용 위에 큰 물이 앉은 모습'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은 세종과 겹쳤습니다.
| 일 | 때 | 비고 |
|---|---|---|
| 『농사직설』 편찬 | 1429년 | 각 도 농부의 경험을 모은 농사책 |
| 측우 제도 | 1441~1442년 | 세자(문종)의 빗물 실험에서 시작해 전국에 강우량 측정 제도를 둠 |
| 훈민정음 창제 | 1443년 | 1446년 반포 |
남아 있는 측우기는 1837년에 만든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 하나뿐이고, 세종 때 만든 원품은 전하지 않습니다.
같은 일주의 진토는 편관입니다. 나를 누르는 무거운 짐으로 읽습니다. 세종은 재위 중에 여러 병을 앓았고, 1439년에는 눈병이 깊어져 "한 걸음 사이에서도 누구인지 알지 못하겠다"고 스스로 말한 기록이 실록에 있습니다.
떠난 날도 임진일
세종은 음력 1450년 2월 17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날의 일진도 임진입니다. 태어난 날과 떠난 날의 간지가 같다는 점은 영상의 마무리였습니다. 60갑자가 60일마다 돌아오므로 우연히 같을 확률은 60분의 1입니다.
소띠라면 기억해 둬. 이 나라 글자를 만든 임금이, 소띠였어.
근거와 읽는 법
- 탄생 간지(정축년 · 4월 · 임진일)와 승하일은 『조선왕조실록』 원문, 양력 환산은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자료를 기준으로 확인했습니다.
- 월주 을사는 절기 기준으로 세웠습니다. 사월(巳月)은 입하부터 망종 전까지이고, 양력 5월 15일은 그 안에 듭니다.
- 십성 · 근묘화실 풀이는 명리학의 통설을 빌린 옛 해석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사주가 '맞혔다'는 뜻이 아니라, 사실과 풀이를 나란히 놓아 본 이야기로 읽어 주세요.
- 병을 사주 탓으로 보지 않습니다. 편관 풀이는 영상의 비유일 뿐 건강을 판단하는 근거가 아닙니다.
- 영상의 세종대왕 그림은 이 영상을 위해 새로 그린 상상화입니다. 전해지는 세종의 어진은 없습니다.
- 소띠를 이루는 글자는 지지 축(丑), 세종의 일간은 천간 임(壬), 세 기둥에 나온 십성은 정관 · 상관 · 편관에 정리했습니다.
내 사주 여덟 글자와 오행 분포는 양지할미 만세력에서 생년월일시만 넣으면 바로 볼 수 있습니다.